부끄럽게도 큰일이 있을 때마다, 정확히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을 때면 언제나 가슴속에서 ‘본업 이탈’하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린다.
지금 이 순간, 대학원 시험의 무거운 공기 속에 잠겨 있으면서도 나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신나게 이 새 블로그의 첫 글을 적고 있다. 이 모습, 어딘가 낯익다. 돌아가면 2022년 봄여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머물던 때다. 그때 나는 낡은 생각들을 버리고 새로운 사고를 배워, 내 미래와 삶의 목표도 좀 더 분명해졌다. AI가 아직 난무하지 않고 모든 걸 혼자서 부딪치며 해결해야 했던 그 시절, 나는 무모한 열정 하나로 인터넷 튜토리얼을 따라 하며 생애 첫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땐 단순히 노력을 쏟는 걸 넘어서, 사랑 그 자체였다. 학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배우고 싶은 걸 배울 수 있었으니까. AI도 없이 사이트를 제대로 돌리려면 혼자서 온갖 블로그를 헤집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마치 넝마주이 아이처럼 방대한 자료 더미에서 쓸모 있는 코드 몇 점을 찾아내던 그 시간들. 나중엔 도메인 구입하고 호스팅 만지는 법을 터득해, 이것저것 난잡하고 화려한 기능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기초도 없이 개척에 나선 나 자신이 대견하고, 입시 경쟁 교육을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이상주의 가난한 학생이 더 대견하다. 당시 블로그는 순수 그 자체였다. 대개는 중고등학교 독서 노트를 확장하거나 유명 작가의 글을 발췌하는 식으로, 사실상 개인 ‘서향의 숲’을 만드는 일이었다. 문학적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ann|‘낭만주의적이다’|낭만주의적이다|드라마 《잠복》에 나오는 표현으로, 여기서는 자조 섞인 겸손의 뜻이다.}}라고나 할까.
이후 이야기는 진부하다. 학교로 돌아가 대학 입시를 준비했고, 그렇게 공들여 만든 블로그는 그대로 방치됐다. 그리고 말로 다하기 힘든 여러 이유로, 옛 사이트는 잡초만 무성한 빈집이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 지금, 대학원 시험이 어김없이 다가왔다. 그러자 이 익숙한, 뭔가 다른 일을 찾아 ‘도피’하려는 마음도 덩달아 싹텄다. 옛 블로그를 떠올리고 감정을 이어가려 했지만, 공부를 놓으니 사람이 참 의지할 데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Hexo로 된 그 옛 사이트를 보니 마치 하늘의 서책처럼 낯설기만 했다. 온갖 디렉터리와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통 알 수 없었다. 브라우저 북마크에서 당시 참고했던 고수들의 블로그를 찾아보니, 그분들의 공간은 내 것보다 더 텅 비어 있었다. 이제는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됐다, 낡은 집은 고치기 어려우니 새 가마를 짓자.
이번에는 요즘 뜨는 Hugo로 갈아탔다. 예전의 풋풋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어느 정도 익숙함이 생겼다. 마음대로 척척 해낼 경지는 아니지만, 처음 만들 때의 안절부절못하던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훨씬 수월했다. 이것이 대학 몇 년을 허송세월하며 얻은 유일한 이자라면 이자일지도.
새로 연 이 공간에 어떤 방문객이 오길 바라진 않는다. 어차피 나를 위해 쓰는 글이고, 나는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하지도 못해 가르칠 지식도 없다. 그저 이상한 공유 욕구가 있어 가슴속에 쌓아두면 답답한데, 남이 볼까 걱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나의 피난처다. 메모와 에세이를 남겨두고, 복습할 수 있는 노트를 만들어주며, 미래의 기대거리로 삼는 곳. 십수 년, 이십 년 뒤에도 이 장소가 살아 있다면, 내 스무 살 무렵의 행적을 되돌아볼 수 있을 테니까. ‘후대가 지금을 보는 것도, 지금 우리가 옛날을 보듯, 이 글에 느낌을 받을 날이 오리라.’
{{ann|지셴린|지셴린|1911—2009, 중국의 언어학자·수필가·베이징대 종신 교수. 그의 《칭화원 일기》에는 교수를 욕하고, 시험을 투덜대고, 여학생을 훔쳐보고, 성적 충동을 고백하며, 아무 할 일도 없었다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훗날 출판 때 누군가는 삭제를 권했지만, 그는 한 글자도 지우지 않고 자신은 결코 성인이 아니며 솔직한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고 고집했다.}} 선생과 {{ann|후스|후스|1891—1962, 현대 사상가·문학가로 신문화운동의 대표 인물. 백화문 운동의 주요 주창자로, 그의 일기에는 마작을 하거나, 마작을 끊는데 실패하거나, 감정 기복을 겪는 등 생활 속 디테일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선생은 일기에 거침없이 소위 ‘볼품없는’ 속내를 적었다. 나도 그런 솔직함을 배우고 싶다. 사람은 성장해야 하고, 성장의 최선의 방법은 자기 자신과 싸워 이성이 감성을, 변증법이 직관을 이기게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설령 성공을 바란다 해도, 영원히 옳고 의심받지 않으며 남 가르치기 좋아하는 ‘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형편없는 수준이면서 남에게 길을 제시하는 꼴. 오늘은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가, 어느 날 신단에서 떨어지면 사람들의 웃음보를 터뜨리며 ‘만세에 유전될’ 이야깃거리가 될 게 뻔하다. 나는 평범하기로서니 이런 폐해자들보다는 훨씬 낫다. 자기를 아는 것이 가장 귀한 법. 게다가 시험 밖의 ‘별난 짓’쯤은 해줘야만, 비로소 내가 생생하게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럼, 이걸로 충분하다. 첫 글, 개업 대길.

